다른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외국인 여성과 함께 살 계획중이다. 지금까지는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이고 배우자가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비자를 준비하고있다.
최근에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서류들 중 한가지를 빼고 전부 갖춰졌고, 내가 준비할 수 없는 서류가 부모님댁에 있었기에 회사 반차를 쓰고 부모님댁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집에는 아버지께서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다. 최근에 정년 나이가 되셔서 퇴직을 하시고 실업급여를 받고 계셔서 가능한 풍경이었다.
평소에 부모님댁에 가더라도 토요일 오후쯤에 가는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무슨일로 빨리 왔는지 물어보셨고 서류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서류를 어머니에게 부탁하였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 서류를 갈무리하고 우체국으로 향하려고 일어났다. 그때 아버지께서 내가 우체국 위치를 모르니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다.
기실 아무리 자녀들이 부모눈에는 애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서른이 훌쩍넘은 아저씨에게 우체국이 모를 거라서 가자고 하신게 아닐 것이나, 대개의 내 나이대 남성들이 그러하듯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더라도 살갑지는 않았던지라 혼자다녀오겠다고 답을 하였다.
그럼에도 계속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셨고, 그제서야 운동하러 나가시는 일을 제외하면 밖에 나가실 일이 없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뜻대로 하자하고 아파트 햔관문을 나섰다.
같이 가자고 하는것에 동의를 하였으면 그냥 같이 조용히 갔으면 좋았을 것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에 나도모르게, 사실 평소의 내 언어습관에 의해 약간 비꼬는듯한 말을 하였는데 바로 다음과 같았다.
"서류를 보내는데 어떤 역할로 가시는건가요?"
이 말을 입에서 뱉고 나자마자 평소와 같이 아차 싶었다.
아버지께서 이 말을 단순한 장난으로 받아들이셨는지 아니면 자녀에 대한 아량으로써 속으로 삮히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역할로써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내 스스로 너무나 혐오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는 보모님께서 나에게 훈계를 하시다가 말문이 막히실때마다 그분의 논리로써 "내가 그분의 자식이기 때문에"라는 발언을 하실 때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라고 그분들을 비난하였기 떄문이다.
물론 우리는 어느정도 타인에게 어떠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일정부분 정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버지가 어머니가 경찰이 소방수가 의사가 회사원 등이 본인의 역할을 거부한다면 우리의 사회가 지속 될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별다른 말 없이 헌신한 분에게, 이제는 짐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될 분에게까지 역할로써만 바라보는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명함이란, 굳이 본인이 실수를 직접경험하지 않고 타인의 조언이나 행동을 보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미리 분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현명함을 발휘하시어 평소 내가 당연히 타인에게 특정 역할만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신다면 우리 사회의 전체 행복수치가 높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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