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잠들었을까.
아마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인 6시간 정도 잔 듯 했다.
졸음이 내 안에서 덜어지는 만큼 어제의 기억이, 현실이 내안에 조금씩 차올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였다.
이내 그냥 신부가 있는 나라로 갔어야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졸음이 완전히 내 안에서 빠져나가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지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은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속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시차 때문에 전화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는 시차가 훨씬 적었다.
전화를 하니 어제보다 초췌해진 아내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까의 생각이 다시 차올랐지만 눈물과 함께 꾹꾹 눌렀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그녀가 더 슬퍼할 것 같았다.
그녀와의 통화를 끝내니 내가 러시아에 있다는 현실감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다시 잠에 들었다.
몇시간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배고픈 것은 어쩔수 없다더니 나도 그런가보다.
일어나 씻고 옷을 대충입고 숙소의 와이파이를 통해 슈퍼마켓의 위치를 찾았다.
밖으로 나와 목적지 방향을 바라보니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었다.
내가 어제 이용한 지하철역은 레닌스키 프로스펙트역이었는데 바로 근처에 유리가가리나 역이 있었다.
세계 첫 우주인인 그의 동상이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기념하기위한 조형물인 듯 했다.
다시한 번 러시아가 과거 거대 제국의 맹주였다는 것을 깨닫았다.

숙소에서 동남쪽의 슈퍼마켓으로 향하는데 나오자마자 난감해졌다.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다.
사실 어제도 숙소를 발견하고 길을 건너려는데 횡단보도가 없어 숙소가 보이는 곳에서 한참 벗어간 곳까지 걸어가 지하도를 통해 건널 수 있었다.
아마 중앙도로 근처에는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처음 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이렇게 설계한 듯 했다.
계속해서 러시아에 머물면서 좋은 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슈퍼마켓에 가는길에 여러종류의 빵을 파는곳이 보였다. 슈퍼에 가도 식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그곳에서 먹을것을 사가기로 했다. 주인은 중앙아시아계 젊은 남자 둘이었다.
메뉴는 케밥과 여러가지 튀긴빵류를 팔고 있었다.
어디서든 케밥은 중박은 치기 때문에 케밥을 하나 시켰는데 빵에 속재료를 싼 후에 그릴에 한번 구워주는게 특이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간이 식당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프론트에 관리인이 없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밖에서 먹어야 했는데 숙소 바로옆에 꽤나 큰 규모의 공원이 있었다.
공원입구에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사인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 빵을 먹는데 그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일단 땅의 거의 대부분이 평지라서 갑갑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나무들도 소나무처럼 구부러지지 않고 직선으로 길게 자라있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그 날이 토요일이었기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 30여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조깅을 하는 모습이 어우러져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평소에 달리기를 즐기는데 결혼식 때문에 운동화를 챙겨오지 않은게 후회되었다.
공원에서의 좋은 기운 때문이었을 까, 음식을 먹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조금더 돌아보기로 했다.
지도앱을 켜서 주변을 살펴보니 공원 바로 옆에 모스크바 강이 흐르고있었다.
어떠한 풍경이었는지는 아래의 사진으로 대체하겠다.

좋은 기분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잠이 너무나 쏟아졌다.
아마 어제 시차때문에 늦게 잤던데다가 아침에 충분히 자지 못한 이유때문인 듯 했다.
조금 눈을 붙이자 하고 눈을 감고 눈을 떳는데 다음날이 되어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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