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곰, 상남자, 보드카, 푸틴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한장의 사진으로 대체하자면 아래과 같을 듯 하다.

나도 러시아 친구들과 교제하기 전까지만 해도 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직접 러시아인들과 이야기하면서 한 번 달라졌고, 8/31 밤 기차에서 내리고나서 한 번 더 달라졌다. 지금에야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추락했지만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소련이라는 제국의 맹주였다. 지금의 중국이라고 하면 중국의 대도시를 여행 해 본 분들은 이해가 빠르실 것 같다. 나도 처음 상해에 갔을 때 생각한 이미지보다도 훨씬 발전한 모습에 놀랐었다. 여하튼 모스크바는 그러한 제국의 수도였고 따라서 건물이나 도로들은 당시 최고의 기술과 자재, 인력으로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건물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넓은 평지를 가진 나라답게 도로도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아마 다른 설명 없이 사진만 보여준다면 서유럽 국가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당시 내가 우울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금새 현실로 돌아와야했다. 시간은 저녁 9시가 넘었고, 인터넷도 안되며, 배도고프고 불의의 사고도 당해 우울했으며 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했다. 시차를 고려하면 34시간 정도 깨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 입구로 들어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캐리어에 폭발물이 없는지 검사받은 후 에야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당연히 우아한 대화가 아닌 무조건 행선지 말하기를 통해서 말이다. 대화는 언어 자체가 아닌 상황이 80%의 역할을 차지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하철역 내부로 들어와 바로 안내판을 찾았다.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본 지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직통은 없고 환승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키릴문자를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거미줄을 보고는 정신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반드시 러시아 여행자분들 께서는 공항에서 유심을 구매하시거나 지하철 어플을 설치하고 가셔야한다. 지하철 어플은 인터넷이 없어도 환승정보를 확인 가능하다. 나는 안내판 옆에 서있던 중앙아시아계 러시아분께 도움을 청했다. 그분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되지도 않는 러시아어를 말하는 외국인을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나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한 번 환승을 하면 되었는데 이 짧은 시간안에 나는 왜 러시아인들이 푸틴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첫번째로 탑승한 지하철은 영화로 따지자면 고담시티에 나올법한 생김새였다. 연식이 최소한 50년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환승 지하철을 탑승하였는데 이번에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Aeroexpress급의 최신형 기차였다. 최근 이슬람의 대학자인 이븐할둔의 "역사서설"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치에 대한 본질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지도자 입장에서의 정치는 피지배자들이 배부르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왜 러시아인들, 적어도 내 두명의 러시아 친구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역과 숙소의 거리는 가까웠다. 숙소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니 변이 마려울 때 변기를 눈에 보게 되는 순간부터 더 배변감이 드는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다행히 숙소 직원은 영어를 할 수 있어 체크인을 하고 짐을 구석에 내팽겨친 후에 침대에 누웠고 잠에 들었다.
--- 계속 ---
'일상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할에 대한 생각 (5) | 2021.09.04 |
---|---|
러시아 여행기 #6 - 시간여행 (0) | 2021.08.30 |
러시아 여행기 #4 - 모든 길은 연결되어있다. (0) | 2021.08.19 |
러시아 여행기 #3 - 빌어먹을 코로나 (1) | 2021.08.18 |
러시아 여행기 #2 - 익숙한 떨림 (1) | 2021.08.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