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사람들은 본인과 관련없는 타인의 고통 혹은 실수를 보면서 깊은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종종 그러한 감정을 느끼곤합니다.
그래서 본 포스팅의 주제가 된 책을 읽으면서 가끔 스며나오는 조소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 포함된 투자 실패사례의 주인공들은 전설적인 투자자이거나 모두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 적은 것처럼 이러한 실패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것은 투자가 극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 또한 투자에 실패한 경험도 있고, 미래에 실패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타인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의 끝을 본인의 개인적인 실패담으로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용기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투자의 거장들도 실패를 피할수 없었고 저자 본인도 그러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이 위대한 투자자가 된 것은 이러한 실패를 털어버리고 오히려 이것을 발판으로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라고요.
마크 트웨인
새뮤얼 클래먼스는 필명 마크 트웨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그를 유머가 넘치는 작가로 기억한다.
그가 쌓아 올린 재산을 거덜 낸 사람은 바로 그가
일생을 살아온 이름, 새뮤얼 클레먼스였다.
리처드 잭스는 그의 저서
<마지막에 웃는자가 되기 위해>
에서 다음와 같이 말했다.
"트웨인은 사기꾼이 펴는 작전의 좋은 먹이감이자
최악의 투자자였다"
(중략)
트웨인은 특히 발명가에게 매료되었다.
그는 증기 기관을 개량한다는 뉴욕 베이퍼라이징에
투자했고, 물론 회사는 기관을 개량하지 못했다.
회사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발명가에게
일주일마다 35달러를 꼬박꼬박 제공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며칠 간격으로 발명가가
찾아왔는데, 숨소리와 걸음걸이에서 매주 36달러를
위스키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나머지 1달러는 어디서 구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중략)
이러한 경험은 트웨인을 작위의 오류뿐 아니라
부작위의 오류로도 이끌었다.
(중략)
쿠란트 사무실에서 벨이 발명품을 소개하는
자리에 트웨인을 초대했다.
트웨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벨은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고 내게 주식을
일부 사라고 권했다. 나는 거절했다.
더 이상 무모한 투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벨은 1주당 25달러를 제시했다.
나는 얼마가 되었는 싫다고 했다."
[벨 그레이엄의 회사는 미국 통신기업
AT&T의 전신입니다.]
마이클 스타인하트
스타인하트는 종목 선정에 타고난 능력을 지녔다.
어려서부터 투자를 한 대가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그는 실제로 바르미츠바(유대교성년식)
때 받은 축하금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스타인하트의 학업과 경력은 전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주식시장을 향한 그의 애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스타인하트는 헤지펀드 업계의 초기 개척자로
조지 소로스, 줄리안 로버트슨과 더불어
이 업계를 대표하는 3인방으로 손꼽힌다.
(중략)
(스타인하트에) 1967년 펀드에 투자한 1달러는
1995년 회사가 문을 닫을 당시 481달러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S&P 500에 투자한 1달러는 19달러가
되는 데 그쳤으니 이 펀드의 성과는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헤지펀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투자자는 서로 자기 돈을 맡아달라며 펀드매니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스타인하트는 손쉽게 모은 자금으로 1993년
네 번째 펀드인 스타인하트 오버시스 펀드를 설립했다.
이 해외 펀드의 운용자산은 5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중략)
주요한 수익원이었던 중소형주로는 유의미한
수익률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그는 어리석은 길을 택했다.
마치 조지 소로스가 된 것처럼 세계 곳곳의
시장을 탐색하며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재빠르게 주식을 사고파는데 익숙했던
스타인하트에게는 몸집을 불린 것이 독소가 되었다.
(중략)
1994년 2월 4일 연준이 금리를 0.25%p 인상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미국 채권 가격이 하락했고
유럽 채권은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채권 시장의 대폭락으로 스타인하트의
포트폴리오는 유럽 대륙만큼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금리가 인상된지 나흘 만에 8억 달러가 사라졌다.
(펀드 원금 대비 16%)
(중략)
1995년 26% 수익률을 기록하며 1년 전 손실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고 보란듯이 재기했다.
그는 이 회복을 계기로 54세에 영원한
은퇴를 결심했다.
워런 버핏
1993년 버크셔는 4억 3.300만 달러에 데스터 슈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몇 년 후 덱스터 슈의 가치는 0이 되었다.
.
더 큰 문제는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버크셔가
발행한 주식이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거래 당시 버크셔 주가는 주당 1만 6,765달러였다.
2017년 1월 주가는 주당 24만 2,000달러로,
버크셔가 덱스터 슈와 교환한 2만 5,200주의 가치도
1,350% 상승했다.
당시 버크셔의 기가총액은 190억 달러였다.
가치가 0이 될 기업을 사기 위해 넘겨준 주식이
나중에는 거래 당시 시가총액 3분의 1에 해당하는
60억 달러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누군가 말해주었더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중략)
주주에게 덱스터 슈를 설명하기 위해 버핏이 사용한
표현은, 투자자에게 과잉 확신을 경고한 투자의
영재가 확신에 차 기업을 마구 먹어치우는 사업가로
자랐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5년 전만 해도 신발 사업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 사업에 종사하는 7,200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출근길에 운전을 하며 "신발만한
사업은 없다"라고 노래합니다.(중략)>
버핏은 H.H. 브라운을 경영하고 덱스터 슈
인수를 중개한 프랭크 루니를 과신했다.
버핏은 덱스터 슈 창립자 해럴드 알폰드 역시
지나치게 신뢰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역시
과신했다. 덱스터 슈의 상황을 빠르게 악화되었고,
이후 5년 동안 버크셔 주주 서한에서 덱스터 슈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곧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4년을 시작으로
이후 5년 동안 덱스터 슈의 신발 부문 이익과
매출이 하락세를 기록했다. 1999년까지 매출은
18%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7%감소했다.
그해 주주 서한에서 버핏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주로 국내에서 신발을 생산하는데,
국내 업체가 효과적인 경쟁을 펼치기에 환경이
극도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1999년 미국에서
판매된 신발 13억 켤레 가운데 약 93%는 극도로
원가가 낮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입니다.>
마이클 배트닉 - 저자
나는 A에서 Z에 이르는 기업의 주식, 국내 및
해외 주식 ETF, 채권, 통화 ETF, 원자재 ETF를
거래했다. '사고 과정'이 항상 동일하지는 않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처럼 거시 경제 요소의 조각을
모두 맞추려 했고, 벤저민 그레이엄처럼 미시적
수준에서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하려 노력했다.
나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내가 매수한 가격에
스스로를 옭아맸다. 이익이 나는 종목은 도중에
팔았고, 손실이 나는 종목은 계속 보유했다.
(중략)
나는 상당수의 대가처럼 열한 살에 주식 투자를
시작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지도 않았고 기숙사에서 알고리즘 같은 것을
구축하지도 않았다. 사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학업에 대한 내 태도다.
나는 고등학교를 진지하게 다니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경영대학에 입학할 만한 SAT 점수를
받았다. 대학 생활은 힘에 부쳤다.(중략)
첫 학기에 평점 1.2를 받았고 다음 학기에는
1.1을 받았다.(중략)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번복이 불가능했다.(중략)
실패라는 현실이 나를 강타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했고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1년 반 늦게 경제학 학위를
받고 대학을 마쳤지만 그때까지도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2008년,
미국인 수백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도
첫 직장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졸업 직후 나는 재무 설계 회사에서 일했다.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사람 같았다.
(중략)
1년 반 동안 나는 형편없는 경험을 했다.
월급은 전혀 받지 못했고, 월세를 지불해야
했으며, 재무 계획을 마련해주는 척하면서
보험 상품을 팔아야 했다.
여자친구, 아버지, 나까지 보험을 계약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18개월 동안 더 이상
아무 계약도 성사하지 못했다.
(중략)
보험회사에 다닐 때 아버지는 나를 진짜
재무 설계사에게 소개했다.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했고 증권사의 보고서를 매일 보여주었다.
(중략)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월가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필요한 공부를 하기로 했다.(중략)
2011년 나는 CFA 2차 시험을 치렀다.(중략)
그러던 어느날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친구가 대형 자산운용사의 법인지원팀 일자리
면접을 주선해주었다.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중략)
인사부작이 법인지원팀에서 일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나는 요점이
한참 빗나간 대답을 하고 말았다.
"나는 시장을 좋아하고, CFA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할 만큼 이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중략)
CFA는 법인지원팀이 아니라 애널리스트에게
필요한 자격이니 엉뚱한 자리에 지원한 것이었다.
(중략)
몇 달 뒤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중략)
면접은 순조로웠고 하루 뒤 면접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수개월 간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다. "경험은 많지 않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신의 가능성을 믿어보죠."
나는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중략)
인사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신용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흠집'에 관해 물었다.(중략)
그런데 알고보니 룸메이트 중 하나가 일부
파손된 부분을 변상하지 않아 그것이 내 신용
보고서에 기록으로 남았던 것이다.(중략)
새 담당자가 연락할 것이라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중략)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중략)
면접은 3분이 걸렸다. 며칠 뒤 이메일이 왔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뉴욕 닉스 대 마이애미
히트의 3차전을 관람하던 중이었다.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했다.
"아쉽지만 죄송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앞서 두 경기를 연속으로 패한 닉스는
세 번째 경기도 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집으로 가고 싶어져 그곳에서 나왔다.
늦은 밤, 나는 롱아일랜드 철도를 타고
블랙베리 단말기에 고개를 파묻은 채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으며 트위터를 보고 있었다.
구독하는 계정 중 가장 좋아하는 조시 브라운*의
트윗이 보였다.(중략)
*(조시 브라운 : 미 자산운용사 리톨츠
매니지먼트의최고경영자)
기차가 역으로 들어설 때 휴대 전화기
전원이 나갔다. 이렇게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만일 휴대 전화기 전원이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고개를 파묻고 걸으며 내 인생의
경로를 완전히 바꿀 한 사람이 곁을 지나쳐
가는 것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그 순간 조시가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기회는 그렇게 수월하게 찾아왔다.
나는 조시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고,
그는 친절하게도 내게 몇 분의 시간을 내주었다.
(중략)
몇 주 뒤, 조시는 자신과 배리가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나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았다. 세상 누구와도 일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 사람이 바로 조시였고,
나는 그에게 고용되었다.(중략)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성공을 운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것이 크게 부풀어 오른 자아를 가리는
가짜 겸손이라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운이 좋아서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하다. 물론 스스로 운을 만들었다.
나는 조시에게 다가갔다.
내게 도박을 걸 만한 시장을 공부했고
충분한 지식을 쌓았다.
그러나 채용 담당자에게 CFA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조시가 밤 11시에 기차를 타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 책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
덕분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략)
나의 투자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입니다."
(중략)
평범한 투자자는 실수에 주저않지만
위대한 투자가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평범한 투자자와 최고 투자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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