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인의 가치관 없이 타인의 주장에만 의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다면 그것은 심지에 불이 붙여진 다이너마이트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제가 최근 포스팅하는 글들은 대부분 롤로 토마시의 레드필 이론으로 바라본 남녀관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글의 성격 및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선진국에 퍼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글의 어조에 약간의 여성 비하 혹은 혐오의 색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확언 하자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결혼과 궁극적으로는 출산을 염두해 두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인간의 삶의 목적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으나 그 안에 들어있는 공통적인 키워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원성의 추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이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삶에는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에 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거나 안도감을 선사하기 위한 내세관을 담은 종교는 전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사회 운동가, 혁명가들은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영원토록 새기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초계와 같이 버리며 음악가, 작가, 예술인들은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거나 몸이 정상이지 않은 상태 그리고 어떠한 외부의 핍박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한 음표, 한 글자, 한 선을 그리기를 멈추지 않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부자들이 본인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합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특성상 오감으로 체험할 수 없는 내세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으며, 사회운동이나 혁명가가 되기 위한 배짱도 부족한데다가 사회 변혁의 시기가 아닌 때에는 미치광이에 그칠뿐더러 예술의 경우 재능이 없다면 이름이 남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렵고 보통 사람들 혹은 상위 1% 재력의 언저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재단이라는 거대한 성을 세우기에는 그 재력은 한줌 모래에 불과할 뿐더러 노후를 다 보낸 후에 자금이 남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위와 같은 업적이나 창작물 혹은 재산을 축적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있어 영원성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다음 세대를 낳고 기르는 것입니다.
위 한문장만 가지고도 수백가지의 반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합이 아닌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냐,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아이를 낫느냐, 아이가 태어나고 싶은지 물어보았느냐 등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생각나는 반박들입니다.
먼저 결혼의 목적이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냐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한 부분이 분명 포함되어있다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남녀의 사랑이 활짝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면 꽃이 진 후에 맺히는 열매는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 여러 가지 피임법이 발명되면서 성관계와 임신의 상관관계가 직접적이지는 않게 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게되어 하게되는 성관계는 임신을 수반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남녀의 사랑으로 태어난 인간아이는 다른 포유류 동물과 다르게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만이 포유류 중에서 수컷이 암컷과 관계를 맺은 후 암컷과 아이를 떠나지 않으며 공동양육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 양육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결혼은 매우 효과적인 사회제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았느냐는 것과 이 질문에 포함되는 내용인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아이를 낫느냐를 것에 대해서는 반대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본인을 태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한적이 있나요? 존재하지도 않은 존재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느냐는 것은 단지 답 없이 비난만 하기 위한 질문일 뿐입니다. 부모로써 아이를 가지려고 결심하게 되었다면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느냐는 것에 대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못한 상태로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이상 부모로써 무한대의 책임을 가지고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건전하고 정답에 더 가까운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원성과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복제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태어나 다음 세대를 복제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 존재입니다. 한동안은 이러한 유전자의 명령에 저항할 수는 있겠으나 평생을 본인의 존재의 원인가 이로 인해 자연히 발생하는 본능 자체를 평생 동안 부정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만일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인간이 영원성을 포기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될까요? 그 인간에게 삶의 의욕이 삶을 끝 마칠 때까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영원성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그 인간은 그 즉시 죽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영원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조장하는 것 때문에 페미니즘은 물론 레드필 이론에 대해서도 100%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설령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끊임없이 본인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꼭 결혼과 출산이 아니어도 됩니다. 예술적인 재능이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영원성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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